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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곡'
    정성엽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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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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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미주 한국일보
유엔세계인협회 저널(Centerpoint Now)
필립스 아카데미 엔도버

INTERVIEW

한인 중학생 자작곡, NJ 필서 연주

입력일자 : 2007-10-16(화)

드와잇 잉글우드 스쿨 8학년 정성엽 군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20여곡 작곡

뉴저지 잉글우드 소재 사립학교인 드와잇 잉글우드 스쿨 8학년에 재학 중인 정성엽(13·사진)군은 뉴저지 필하모닉 연주로 자신이 작곡한 오케스트라 곡을 처음으로 발표했다.

지난 11일 드와잇 잉글우드 스쿨에서 열린 뉴저지 필 초청연주회(음악감독 김남윤)에서 연주된 정군의 곡은 팝클래식 분위기의 오케스트라 선율이 아름다운 'Whimsica, Phantasia farrago exordium'. 올해 나이 열 세 살 밖에 안됐지만 세계적인 작곡가를 꿈꾸며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작곡을 시작, 미완성곡을 포함 지금까지 20여 곡을 만들었다.

지난 2005년 미국으로 유학 온 정군은 작곡 공부를 위해 만곡이 넘는 클래식 곡을 선곡, 매일같이 클래식 음악과 함께 하고 있다.

정군은 지난 5년간 유럽, 아시아, 호주, 캐나다, 이집트, 아프리카 등 전 세계 30여개국을 여행, 각 나라의 음악을 접하고 특히 음악의 도시인 오스트리아를 방문 후 깊은 인상을 받아 클래식 음악에 빠지게 됐다고. 모차르트, 브람스, 베토벤, 드비시, 슈베르트 등 대가들의 다양한 고전음악을 몇 년에 걸쳐 스스로 평하고 작곡하고 듣고 느끼며 작곡가로서의 꿈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에는 이 학교의 가장 명예로운 상이라 할 수 있는 니콜라스 랜돌프 트래스크 상을 받았다. 니콜라스 랜돌프 트래스크 상은 학교 공동체 생활에 뛰어난 모범을 보이며 남을 위해 봉사하다 지난 1986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이 학교 7학년생이던 니콜라스 랜돌프 트래스크를 기리기 위해 제정됐다. 이 학교 7학년생들이 매년 7학년에 재학 중인 남, 녀 한명씩을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정군은 같은 해 교내 미술상 스튜디오 아트상도 받았고 학교 성적도 전 과목 A일 정도로 다방면에 우수한 학생이다. 한국에서 건설업에 종사했던 정수태씨와 주부 유영순씨 사이에 외아들이다.

<김진혜 기자>

2011년 유엔세계인협회 저널
'CENTERPOINT NOW' 인터뷰

개인 노력의 힘 젊은 작곡가 정성엽의 통찰력

서울에서 한 시간 떨어진 곳에서, 나는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내가 다양성을 처음으로 접한 것은 여행을 통해서였습니다. 오스트리아에 있는 모차르트의 집에 가서 16세기와 17세기의 건물들을 보며 놀라워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내 평생 그런 건축물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겼던 건 세계의 언어들이었습니다. 언어는 종종 구별화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인들이 말하는 방식은 미국인들이 말하는 방식과 완전히 다릅니다. 부모님이 한국어로 말했을 때, 나는 자동으로 영어로 말하는 환경에서 하는 것과는 다르게 행동합니다. 다른 예로는, 언어는 문화들 사이에서 공통점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터키에 갔을 때, 여행가이드가 한국어와 일치하는 터키어의 특정한 단어들에 관해 설명해주었습니다. 두 나라는 몇 천 마일이나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언어의 뿌리를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게 인류학과 언어학, 그리고 어떻게 그처럼 다른 세계의 문화들이 한편으로는 같을 수도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해주었습니다.

우리가 말을 통해 의사소통 하지 못할 때조차도, 음악을 통해서는 의사소통 할 수 있기 때문에 음악이 세계 공통어란 것은 사실입니다. 나는 미국에 와서 이것에 대해 직접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세 살 때 한국에서 처음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나와 다른 언어로 말한다는 것은, 열 살 때 미국에 온 나에게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한국어로 된 생각을 영어로 옮기기도 어렵고 피곤한 일이었지만,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문화적 용어였습니다. 비록 사람들은 내 언어, 배경 및 문화에 관심을 보이지만 나는 그들이 인종을 통해 타인을 구별하는 것이 싫습니다. 내가 '미국인'으로 분류되고 싶지 않은 것만큼이나 '한국인'이라고 구체적으로 불리는 것 또한 원치 않았습니다. 나는 우리가 인종을 전적으로 없애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다른 점들을 인식하되 그것을 남용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열두 살 때 오케스트라에 합류한 것은 함께 공유하는 열정과 노력을 통해
나로 하여금 동료들과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주었습니다. 나는 현재 Unaccompanied Minors라고 불리는 오케스트라의 일원입니다. 우리는 주로 현대 팝과 록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예로 우리는 2009년의 상위 10위권 노래들을 연주한 바 있습니다. 팝과 록을 클래식 음악과 연결해주는 더 많은 다리가 필요합니다. 클래식 음악을 전혀 접해보지 않은 채, 내가 아는 많은 사람도 그것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 머릿속 한쪽에는 늘 음악이 있고, 새로운 선율을 만드는 걸 즐기긴 했지만, 작곡을 시작하면서 마치 회로가 연결된 듯 하기 전까지는 그것을 꺼내놓을 수 없었습니다. 자연은 내게 영감을 줍니다. 산, 홍수, 뇌우로 알려진 매사추세츠 주 탱글우드에 있을 때 한 사람이 팔을 벌려 비를 포옹하는 이미지는 내게 'Into My Arms'란 곡을 쓰는데 영감을 주었습니다. 카네기 홀에서 내가 작곡한 작품이 연주되었던 것은 숨이 멎는 듯 한 일이었습니다. 나는 아직도 내 작품이 그곳에서 연주되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현재 나는 12음계 조성 음악과 비조성 음악 사이에 다리를 놓기 위한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더 자세히 들어가지는 않겠습니다.

내게는 명상 또한 중요합니다. 다행히 학교에 명상실이 있어서 명상을 즐기는 소수의 사람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는 자신을 그곳의 고정 학생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나는 노력하면 무엇이든 원하는 걸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기본 하주곡을 들을 때, 모두가 잘 연주하는 것은 당연시되지만, 그 합주단 안에 있을 때에는 지휘자나 구성원들과의 의사소통이 어떠한 어려움과 노력이 수반되는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상황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를 만드는 개인의 노력입니다.

1994년에 태어난 정성엽(샘)은 그의 나이 10살에 20개의 단곡 작품들을 작곡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뉴저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의해 링컨센터 에이버리 피셔홀과 카네기홀 아이작 스턴 오디토리엄에서 연주된 바 있습니다. 그는 현재 매사추세츠 주에 있는 필립스 아카데미 앤도버의 학생입니다.